지혜로운 삶

"마음의 자물쇠를 풀고 진리를 만나다"

단산학당 2025. 3. 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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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드나드는 곳을 문이라 하고, 바람이 넘나드는 곳에 창문을 만들었지. 보이는 문은 누구나 닫혀있는지 열려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 그 누가 볼 수 있고, 열 수 있을까?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눈을 보라. 게다가 살짝 웃는 아이의 눈, 어디서 닫힌 마음을 볼 수 있으랴! 누구나 열린 마음은 저 아이의 얼굴을 보듯, 싫어할 이 아무도 없다. 사람의 마음속엔 아무도 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자물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욕심이라, 벌거숭이 아이는 열쇠가 단단히 굳지 않아, 타고난 본모습으로 산다.


대인(大人)의 마음은 만 가지 변화에 통달하고, 어린 아이의 마음은 즉 순일(純一)하여 거짓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대인(大人)이 대인(大人)이 되는 까닭은, 정히 그가 물욕에 유혹되지 않고 그 순일하고 거짓됨이 없는 본연을 온전히 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서 넓혀나가고 채워나가면 즉, 알지 못하는 바도 없고 능하지 못하는 바도 없어서, 극도로 그 큰 것이 된다.

대인이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막힘이 없는 사람이다. 그 누가 따로 열어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가 보아야 하고, 처절하게 자기의 막힘을 뚫어야 하며, 잠시라도 게을리하면, 어렵사리 조금의 문틈을 열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니, 평생 쉼 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 목표는 어떨까요? 하늘이다. 아니 영원불변 열려 있고 살아 있는 우주다. 이곳에 먼저 도달하여 만인의 모델이 성인이요, 거의 도달했던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율곡, 퇴계, 도연명, 제갈량 같은 현인들이다.
아! 오늘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떠오르는 밝은 해를 가득 품고 살고자 한다. 


이 글은 '마음의 문'이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대인의 철학적 경지를 탐구합니다.

보이는 문과 창문은 누구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은 열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은 욕심이라는 자물쇠에 잠겨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욕심이 굳지 않아 열린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반면, 대인은 만물의 변화를 꿰뚫고, 욕심에 좌우되지 않으며, 순수함과 진실함을 유지하여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합니다.

이러한 대인의 경지는 꾸준한 자기 성찰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며, 평생 동안 쉼 없이 자신의 막힘을 뚫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최종 목표로 제시된 '하늘'과 '살아 있는 우주'는 대인의 궁극적인 이상을 나타내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인물로 성인과 역사 속 현인들이 예시로 등장합니다. 결국, 글쓴이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욕심을 넘어선 삶을 살고자 하는 희망과 결의를 표현하며, 독자들에게도 함께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합니다.

이 글은 자기 성찰과 삶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